
한때 100% 치사율이었던 병 FIP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FIP, Feline Infectious Peritonitis)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진단 즉시 안락사를 고려해야 하는 질환이었다. 고양이 코로나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전신 염증 반응을 유발하는 이 질환은, 치료법이 없던 시절 진단 후 생존 기간이 수일에서 수주에 불과했다. 보호자들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고, 중국발 블랙마켓 약물에 의존하며 살려보려 했다. 그것이 2022년 이전의 FIP 치료 현실이었다.
전환점은 2018~2019년에 찾아왔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의 닐스 페더슨(Niels Pedersen) 교수팀이 GS-441524라는 항바이러스 뉴클레오사이드 유사체가 FIP에 놀라운 치료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임상에서 죽어가던 고양이들이 며칠 만에 회복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GS-441524란 무엇인가
GS-441524는 코로나19 치료제로 알려진 렘데시비르(remdesivir)의 주요 대사 산물이다. 렘데시비르가 체내에서 분해되면 GS-441524가 생성되며, 이 물질이 바이러스의 RNA 복제를 직접 차단한다. 고양이 FIP 바이러스 역시 RNA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이 기전이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특허권이었다. GS-441524를 개발한 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s)가 수의학적 용도로의 라이선스 허가를 거부하면서, 이 약은 오랫동안 공식적인 경로로는 공급이 불가능했다. 그 공백을 중국 제조사들이 파고들어 블랙마켓이 형성됐고, 보호자들은 불명확한 순도와 농도의 약물에 의존해야 했다.
2024년 6월 1일, 미국에서 처방이 가능해졌다
2024년 5월 10일, FDA는 중요한 입장을 발표했다. GS-441524는 공식 승인 약물이 아니지만, 수의사가 특정 고양이 환자에게 FIP 치료 목적으로 처방할 경우 FDA가 규제 집행을 유보한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합법'이 아니라 'FDA가 단속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처방 가능한 경로가 열린 것을 의미했다.
이를 기반으로 2024년 6월 1일부터, 미국의 Stokes Pharmacy와 호주·영국에서 임상 연구에 사용되던 Bova Group이 파트너십을 맺어 미국산 경구 GS-441524 정제를 수의사 처방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임상 연구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포뮬라로 제조된 제품이 이제 공인된 조제 약국을 통해 제공된다는 것은, FIP 치료에 있어 신뢰성과 접근성 모두를 높이는 변화였다.
치료 효과와 프로토콜
FIP 치료는 통상 84일(12주)간 GS-441524를 매일 투여하는 것을 기본 프로토콜로 한다. 습식 FIP(흉수, 복수)와 건식 FIP(육아종성 병변), 신경형 FIP에 따라 용량과 기간이 조정된다. 호주와 영국에서의 임상 연구를 포함한 다수의 데이터에서 80~90% 이상의 관해율이 보고됐다. 완치에 가까운 결과를 보이는 사례도 상당수다.
한국에서는 아직 공식 처방 경로가 확립되지 않았으며, 일부 수의사들이 비공인 경로를 통해 접근하거나 보호자들이 직접 해외 루트로 구하는 현실이 남아 있다. 이 부분은 앞으로 국내 수의약 정책의 변화가 필요한 영역이다.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질환에 이만한 치료제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FIP 진단을 받은 고양이와 보호자에게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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