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전 고양이의 밥그릇이 점점 비어가는 이유, 빈혈을 빼놓으면 안 된다
만성신장병(CKD) 고양이를 오래 케어한 보호자들은 공통된 경험을 이야기한다. 어느 순간부터 밥을 남기고, 움직임이 줄고, 잘 자는 것 같은데 활기가 없다. 신장 수치가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악화의 상당 부분은 신장병 자체보다 그것이 유발하는 빈혈 때문인 경우가 많다.
신장은 혈액 생성을 조절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신장에서 분비되는 에리스로포이에틴(EPO)은 골수에 적혈구를 만들라는 신호를 보낸다. 신장이 손상되면 EPO 생산이 줄고, 골수는 적혈구를 충분히 만들지 못한다. 조직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니 고양이가 무기력해지고 식욕을 잃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CKD 고양이의 절반 이상에서 빈혈이 동반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기존 치료의 한계: 사람용 EPO의 비공인 사용
오랫동안 수의사들은 이 빈혈을 치료하기 위해 사람용 적혈구 생성 촉진제(EPO, 다베포에틴 등)를 비공인 용도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고양이용으로 승인된 약물이 아니었고, 반복 투여 시 고양이의 면역계가 외래 단백질에 대한 항체를 형성해 오히려 자가 EPO까지 공격하는 순수적혈구 무형성증(PRCA)이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 이 경우 치료 이전보다 더 심각한 빈혈에 빠지는 최악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고양이 신부전 빈혈 치료에 FDA가 조건부 승인한 최초의 약물이 바로 Varenzin-CA1(바렌진-CA1)이다. 성분명은 몰리두스타트(molidustat), 제조사는 Elanco이며, 2023년 5월 FDA 조건부 승인을 받고 같은 해 9월 출시됐다.
HIF-PH 억제제, 산소 부족을 흉내 낸다
몰리두스타트는 HIF-PH(저산소 유도 인자 프롤릴 수산화효소) 억제제 계열이다. HIF는 체내 산소가 부족할 때 활성화되어 EPO 생산을 늘리도록 신호를 보내는 단백질인데, 정상 상태에서는 HIF-PH 효소가 HIF를 분해해 버린다. 몰리두스타트는 이 분해 효소를 억제함으로써 산소가 정상임에도 '부족한 것처럼' 신체가 인식하게 만들어 EPO 생산을 증가시킨다.
사람용 EPO를 외부에서 주입하는 것과 달리, 고양이 자신의 신장에서 EPO가 만들어지도록 유도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면역 반응 문제가 원칙적으로 없다.
임상 데이터와 투여 방법
임상 연구에서 Varenzin-CA1은 28일 치료 시점에 50%의 고양이에서, 56일 시점에는 75%의 고양이에서 헤마토크릿이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무기력증이 줄고 체중도 증가하는 추세가 함께 확인됐다.
투여 방법은 하루 한 번 경구 투여로, 최대 28일 연속 투여 후 최소 7일 휴약기를 갖는 사이클 방식이다. 필요에 따라 치료 사이클을 반복할 수 있다. 가장 흔한 부작용은 구토이며, 드물게 혈압 상승, 혈전색전증 위험이 있어 혈구 수치 모니터링이 필수다. 헤마토크릿이 지나치게 높아지면(적혈구 과다증) 혈액이 걸쭉해져 혈전 위험이 증가하므로 치료 14일째부터 정기적인 혈구 확인이 권고된다.
CKD는 완치가 없는 질환이다. Varenzin-CA1 역시 신장병을 치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장병이 만들어낸 빈혈을 잡아줌으로써 고양이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약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수의학 (고양이의 병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양이 공포증 치료제, Bonqat 프레가발린 경구액 (0) | 2026.03.17 |
|---|---|
| 고양이 복막염 치료제 GS-441524 불치병의 종말 (1) | 2026.03.16 |
| 고양이 당뇨 신약 SGLT-2 억제제, 인슐린 주사 없이 알약 하나로! (0) | 2026.03.14 |
| 고양이 신약, 심장병 치료제 펠리신 Felycin-CA1 고양이 심장병 최초 FDA조건부 승인 (0) | 2026.03.13 |
| 고양이갑상선, 살이 빠지는데 밥은 잘 먹는다면? 감상선을 의심하라 (0) | 2026.03.12 |
댓글